이사야 43: 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받음으로써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운명에 혁명이 일어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마귀의 포로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의 축복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로운 상태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늘보좌로부터 내려오는 의로움을 덧입는 운명으로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과 저는 단순하게 성경을 열심히 묵상- 실천하고 교회생활에 충실하기만 해도 그로 인해서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혜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성경에서 다루거나 암시하는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들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는 가계의 저주입니다.
출애굽34: 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악행에 대하여 자손3-4대까지 보응한다는 표현이 바로 가계의 저주라는 주제의 근거구절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푼다고 하는 구절은 가계의 축복의 근거 구절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계의 축복보다는 가게의 저주를 더 심각하게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가계의 저주를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들이 공통적으로 열거하는 가계의 저주의 징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성 경제적 문제들/ 만성 질병과 연약함/ 부부간의 문제들/ 사고 유발/ 조사(早死)/ 정신 질환/ 타인에 의한 학대나 악용(정신적, 육체적, 성적 악용과 배척을 포함함, 자비나 호의는 전혀 없고 잔인과 폭행의 피해자가 됨)/방황, 방랑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도시마다 직장마다 대인관계마다 옮겨 다니게 됨.
“우리 가문에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문은 오랫동안 가난과 패배의 저주 속에 살아왔다.”고 가정의 반복되는 문제를 인정한다. 그러나 아버지 존 오스틴 목사는 가난과 패배와 평범함이라는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렸다. 아버지가 믿음으로 나아가자 가족을 괴롭히던 가난의 저주가 드디어 풀렸다. 나는 이 복이 나의 손자, 손자의 손자까지 이어지리리 확신한다.-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저자
"복과 저주가 어떻게 세대를 통해 전가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신자들에게 약속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한 획기적 단계입니다"
- 피터 와그너 박스 / 전 풀려신학교 교수,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실패와 타락은 대를 이어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에 분명이 밝혀져 있는 사실임을 확증한다. 신체적 특성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것처럼 죄의 영향과 특정한 죄가 대를 이어 되풀이 되는 경향을 "영적 유전자"라고 한다. 보혈의 능력을 통해 가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잭 헤이포드 목사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저는 지지합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앞에서의 분명한 목표설정과 결단입니다. 조상의 죄업은 3-4대에 미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당사자의 태도라고 단언합니다.
에스겔18:1-21/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6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9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아니하고 이 죄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11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12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탈하거나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13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4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15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16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저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강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17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18 그의 아버지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백성들 중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는 그의 죄악으로 죽으리라/ 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가계의 저주를 끊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더욱 중요한 자신의 못된 습관이나, 사고방식 태도 그중에서도 행동양식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운명은 결단코 개선되지 않습니다. 조상의 죄업이 자신을 완전히 가두고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거짓입니다.
마가복음 5장 15000마리의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거라사 광인도 제 발로 예수님에게 뛰어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1.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생각과 상상입니다. 삭티 거웨인이라는 미국의 여자 작가가 있습니다. CREATIVE VISUALIZATION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Use The Power of Your Imagination To Create What You Want In Your Life-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또는 간절히 원하면 기적처럼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삭티 거웨인은 10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는데, 서른 살이 되던 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 갈등 같은 문제들이 쉽게 없애 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정신 능력을 확실하게 계발시켜내는 방법을 터득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시각화는 생각의 혁명입니다. 시각화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안에 본래부터 들어 있는 창조의 에너지로서 그 사실을 인식하든 안하든, 우리는 끊임없이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상상력은 마음속의 무언가를 떠올려내는 능력으로서, 우리가 어떤 형태의 이미지를 그려내면 그 이미지는 그 이미지에 상응하는 물리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여서 결국에는 그 에너지를 물리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인간 정신에 대한 이 같은 주장은 상당한 수준의 실증적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이 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의 과학성을 갖는다면, 그 근거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에게는 비록 불신자라해도 그 정신 안에는 창조의 능력이 내되어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반 응총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뭔가를 실제로 주시기 전에, 받을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시각화하면서 개념과 이미지를 분명히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창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얻을 땅에 대하여 미리 와서 보면서 이미지를 형성하고 실제로 걸어 다녀보면서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도록 조치하셨습니다. 삭티거웨인의 공식으로 이 말씀을 다시 설명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약속된 땅을 주시기 전에 미리 아브람 안에 그 땅을 원하는 마음과 원하는 땅의 이미지와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각인시켜주셨고, 그 결과 아브람 안에는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작동하게 되었으며, 훗날에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게 되었다. 가 될 것입니다. 물론 아브람 안에 내재된 창조에너지의 작동만이 약속이 성취되게 한 유일한 힘은 아닐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지속적인 열심과 행동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13:58/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에, 거기서는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으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아브람의 내면에 형성된 소원과 이미지와 구체적인 개념들은 그 자체로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작동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창조적으로 일하시게 하는 매우 큰 원인 변수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일하시기 위해서라도 사람의 내면에는 소원과 그 소원의 이미지와 구체적인 개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운명을 결정짓은 요소는 믿음의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역시 지상에서 그의 성도들이 하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민수기 14: 27-28/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순종의 말과 감사의 말,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응이, 원망과 낙심과 비난과 험담의 말, 더러운 말, 불신앙의 말을 하는 자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보응이 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 한마디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사례는 십자가상의 두 강도입니다.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면 너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조롱조로 말하였고, 다른 한 강도는 자기 친구 강도를 꾸짖으면서, 예수님을 옹호하는 말을 하였으며,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 말이 예수님의 귀에 들어갔으며,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14:5-15/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그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부정적임 말로)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갈렙은 45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들려주신 약속을 잊지 않고 붙잡고 있었습니다.
네 발로 밟은 땅을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따라, 그 땅을 마음속에 그렸을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때마다 이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자주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자,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45년 전에 자기가 발로 밟아 탐색하였던 그 땅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분배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물론 그 땅에는 거인 족 아낙 자손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85세의 노익장 갈렙은 자기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가서 거인 족을 몰아내고, 그 지역을 자기들의 거주지로 만들어냈습니다.
갈렙은 유다지파의 최고 원로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지파의 숫자는 76,500 명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에 비하여 대략 2 배 정도의 인구 규모이었는데, 분배 받은 성읍의 수는 대략 6 배나 많았습니다. 민26:53에는 인구수대로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게 하라고 하여 평등의 원칙이 반포되었는데, 실제로 최종 결과를 보면, 유다 지파에게 불균형적으로 쏠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토지는 인구 비례로 분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 수에 넘치도록 분배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다지파도 인구수대로 분배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의 영도 아래 있는 유다지파는 굳건한 믿음과 왕성한 사기로 분배 받은 것 이상으로 영토를 확보해 냈을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 비하여 6 곱절이나 되는 영토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얻어 내고는 이 영토를 토지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 지파인 시므온 사람들에게 살만큼 가져가도록 무려 18 개 성읍과 주변 촌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나중에 다윗 왕이 나오고 메시야가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3.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목표를 설정하라.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보통 자신의 잠재력의 10%정도를 사용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심어 넣어주신 재능들 가운데 재대로 개발되고 행사되어 열매를 맺는 것이 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창조하고 의도하신대로 계발시키지 않고, 여러 가지 제약으로 묶어 놓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에 관찰하는 족쇄 중 으뜸은 두려움과 회피와 합리화입니다. 목표를 성취하는 것 자체는 소원하지만, 실제로 성취하려하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두려움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왜 그쪽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지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그 이유들에 안주하여 모호하게 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953년에 예일대를 졸업한 학생들의 20년 후인 1973년에 사회적 지위와 생활 상태를 조사한 통계입니다. 1973년에 조사해 보니, 예일대 졸업생의 3%만이 미국 사회에서 최고의 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층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머지 10%는 유복하고 안정적인 중산층이 되어 있었고, 60%는 서민층으로 다소 가난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은 자력을 해나가는 상태였으며, 27%는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마저도 해나갈 수없는 빈곤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상위3%는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이것을 글로 적어 놓고, 시각화시켜 수시로 선포하는 사람들이며, 중산층 10%는 목표를 분명히 세웠으나, 이것을 글로 적어 놓지는 않고 시각화를 모호하게 한 사람들이며, 서민층 60%는 목표를 생각은 했으나, 분명하게 정리해 놓지 않고 시각화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며, 빈곤층 27%는 아예 목표가 없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지도층과 중산층과의 재산과 영향력의 차이는 100 배였다고 합니다. 이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인생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일류대학교 입학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일류 대학 졸업이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든지 20년 후의 상태와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대학졸업장이 아니라, 누가 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시각화 시켜서 자주 선포하고, 믿음의 말을 자주 더 많이 하였는가 입니다.
열왕기하 13장: 18-19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소천하기 직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엘리사는 탁월한 영성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국방을 책임져 온 대단한 선지자였습니다. 왕이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엘리사는 왕의 손에 안찰한 다음에 화살로 땅을 치라고 말합니다. 왕이 화살로 땅을 세 번치니까, 병상에 누워 있던 엘리사가 화를 벌컥 내면서 왜 세 번만 치느냐고 혼냅니다. 왕은 5-6번 쳤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왕은 아람을 세 번만 쳐서 이길 것입니다. 라고 안타깝게 말합니다. 요아스
왕에게 그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으며 그것으로 그의 운명은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엘리사가 미리 많이 치라고 살짝 귀띔을 해주었으면, 왕은 열 번이라도 내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암시 없이 그냥 치라고만 하니까, 평상시의 반응체계에 따라 세 번을 쳤습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는 왕이 내리친 회수만큼만,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습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똑같은 반응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하 13장 19절이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체계를 가지고 있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운명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어떤 순간이 있는데, 당사자는 그 순간이 중요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그 운명의 시간을 맞이한다는 점입니다. 뭔가를 선택하고 목표를 정해야하는데, 만약에 그 순간이 그렇게 운명적인 시간인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최대치를 잡았을 것이 확실하지만, 그 같은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평상시에 그 사람의 반응체계가 지시하는 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내 놓고 보면, 그 때 설정한 목표와 실천한 행동이 그대로 자기의 인생을 결정해 버렸음을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요아스 왕은 후회스럽게도 적당히 설정하고 적당히 행동하였습니다. 만약에 이 두 주인공이 평상시에 시원스럽고 대담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 온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던져주셔서 다가온 기회에서도 맥시멈으로 선택하고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운명은 매우 특별한 순간에 결정되지만, 그러나 훨씬 더 평상시에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조건과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 왔느냐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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